[오마이뉴스 김형순 기자] 사비나 미술관과 한국과학기술 연구원(KIST)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 과학문화재단(KSF) 후원한, '예술과 과학의 판타지(ArtiST PROJECT)' 전이 안국동에 있는 사비나 미술관에서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일종의 프로젝트형 전시로 'ArtiST PROJECT'는 'Art in Science Technology'의 약자다. 올 여름에 전시된 '미술과 수학의 교감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참여 작가로는 주로 서울대 조소과 출신으로 노진아, 문주, 안수진, 양아치, 이장원, 이중근, 최성록, 최태윤과 과학자는 KIST 중심으로 강성철, 김재경, 문성욱, 신승도, 안상철, 유범재, 유영숙, 이광렬, 최정혜, 임형철와 연구원 서호원, 오승용, 이우섭, 전세웅 그리고 워크숍과 평론에서는 심보슬, 심혜련, 안광준, 이원곤, 정광수, 황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작가들이 KIST를 방문하는 등 작가와 과학자가 6개월간 실질적 만남이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이번 전시회의 주제와 영역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관점과 견해를 주고받으면서 공통점, 차이점, 그 한계점을 찾아보는 '도킹 AS(Docking Artist & Scientist)'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예술과 과학은 하나
20세기 가장 전위적이고 현대적 건축의 상징인,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예술과 과학의 합작이다. 현대 문화의 특징이 바로 예술과 과학이 하나 되는 것이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일찍이 과학과 예술 관계를 이렇게 설파했다.
"예술과 과학은 얼핏 보면 반대개념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최근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현대사상의 주류이다. 이제 예술과 기술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현대 예술은 과학 기술의 도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경우는 과학과 예술이 너무나 오랫동안 멀게만 살아왔다. 21세기를 맞아 상봉과 소통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번 전시는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다.
몇 년 전 파리를 잠시 들렀을 때의 충격을 받았던 것은, 예술가와 함께 과학자 동상이 많았다는 점이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혼령이 이 도시를 지배하는 듯했다. 예술가와 과학자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파리는 바로 이런 창조자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15~16세기 유럽 르네상스 시절에 예술가는 과학자요 발명가요 기하학자요 건축가였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대표적 예이다. 그는 21세기 신 르네상스 문화기에 휴머니스트의 전형이요, 인류의 이상형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이 우리나라 출신이라는 점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가 바로 '21세기형 다빈치'이다. 다만 아쉬움은 그의 모국에서 정작 그의 예술혼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 예술과 과학의 만남은 더욱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 제2, 제3의 백남준이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1세기 생존 전략
이번 전시회가 비록 걸음마 수준이고 아직까지 대중적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해도 너무 상심하거나 실망할 일은 아니다. 백남준도 처음 미디어 아트를 시작했을 때는 그러했으리라. 20세기 미술을 열어 준 입체파가 나오기까지 이집트 미술에서 거슬러 올라간다면 수천 년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가!
이번 전시의 특징은 작품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낯설고 생경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현대미술은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것 같다. 이번 전시가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반응을 주는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어린아이들 많이 관람했으면 좋겠다. 교사에게 작품 해설이 힘들 테지만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다.
예술 교육은 과학 교육과 함께 21세기 생존의 문제이다. 이런 창조성 개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교장 선생님이 몇이나 될까? 이런 시기에 사학법 하나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논쟁에 휩싸여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 교육자들은 우리 교육의 열기는 유지하되 그 방향은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충고한다. 어찌 보면 교육에서 우리는 서양에서 이미 포기한 것, 한물 간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교육의 최대 이슈는 '창의성으로 돌아가자(Back to creativity)'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 사태는 한국 과학계 더 나아가 언론계, 교육계 등 문화 전반에서 IMF를 맞은 셈이다. 조급한 결과주의가 낳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는 과정과 절차를 제대로 밟아 가는 보다 성숙하고 차원 높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절실히 느낀다.
인터액티브 아트
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강형철, KIST 생체대사연구센터 유영숙 박사와 같이한 노진아의 작품 'R1007세포 덩어리'는 인터액티브 설치 작품으로, 인간의 꿈인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가상 시나리오로 형상화하였다. 예술가의 상상과 과학자의 기술이 협업을 통해서 그 진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에는 인간과 기계를 넘어서 기계가 인간의 기능을 능가하는 또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기계에 물과 불, 피와 살을 넣고 생명이 부여되는 것, 한 마리를 만들면 그것이 두 마리가 되고, 또 머리 부분만 자라도 증식할 수 있는 생물학적 관점의 상상 말이다.
과학과 예술은 궁극적 인간 해방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세대는 기술 유인원, 사이보그 로봇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는 미술의 조형과 과학의 공학이 합쳐져야 한다. 예술과 과학의 상호작용(interactive, 인터액티브)은 필연적이다. 현대미술에서 인터액티브 아트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기계, 생명적 이미지
1984년 위성으로 전 세계에 중계된 백남준 미디어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후 또 다른 예술 해방구에 불을 지룬 사람은 바로 이불이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20세기 미술전'에서 본 1999년 작 '사이보그 W5'는 충격적이었다. 하나의 '기계-생명 이미지'가 출현된 것이다. 노진아 작품은 이러한 맥락을 나름대로 재창조하고 있다.
유별난 이름의 작가 양아치의 작품 '오사만 빈 라덴의 힌덴부르크'(Osama bin Laden's Hinden burg)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테러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양극화의 부수 현상이다. 이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가난한 나라는 돈이 없어 전면전은 못하고 테러를 자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풍자한 작품 같다.
작가는 작품에 이런 말을 나란히 적어 두고 있다.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만 빈 라덴은 타임머신을 타고 1937년으로 갑니다. 1937년으로 이동한 라빈은 힌덴부르크 참사를 일으켜 알카에다 조직이 비선형 시간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미국에서 폭파 사고가 있었던 공통점을 가진 이 사건은 문명 충돌의 경고와 공포를 담은 듯하다.
문화 코드 전환
이중근의 시리즈 작품 '보이는 & 보이지 않는 몸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체의 눈, 귀, 혀, 코, 입술 등이 패턴화된 것이다. 이런 기하학적 그림은 어려서 신비한 황홀감에 도취해 보던 만화경을 연상시킨다. 그 만화경 속에는 작은 찌꺼기들이 연출한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은 어린 마음에도 큰 감동을 주었다.
이중근과 같이 작업한 이광렬 박사는 단지 검은색의 얼룩으로 숯검정으로만 보일 수 있는 것을 몇 백 배 확대 현미경으로 보면서 미세한 물체 속에 담긴 작은 세상의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하고는 놀라운 기쁨과 경이를 맛본다. 작가는 그런 사진을 다시 코드를 바꾸어 재생산한 것이다.
이장원의 작품 '두 사람'은 분명 예술가와 과학자를 가리킬 것이다. 두 로봇은 서로 연극을 하는 것 같은 극적 효과를 준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대사 내용이 뭘까 궁금해진다. 이야기가 깊어지면 서로 통할 것 같다. 상극이 상통으로 코드 전환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견해차가 나면 '사이언스'라는 이름표가 달린 카메라는 실제로 다르게 작동한단다.
작가의 눈으로 보는 과학자나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예술가, 그들의 차이점과 일치점, 그 해결책을 내놓는 방식이 카메라의 눈에 잡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과학적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이 과연 예술가적 미적 안목을 갖출 수 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최태윤의 퍼포먼스 '욕망의 대상'은 색다른 모양과 색채를 띤 모형 미디어를 활용하여 인간들의 소통의 문제를 다르고 있다. 작가는 직접 서울 시내를 여행하는 관광객이 되어 온몸으로 작업을 실행에 옮긴다. 이런 엉뚱하고 기발한 착상은 마치 과학과 예술이 어렵게 소통을 뚫고 나가듯이 작가와 관객의 소통의 숨통을 터주는 통로 같다.
그가 거리로 나선 것은 바로 가장 현장감 있는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려 했기 때문이리라. 이번 전시의 총결산을 암시해 주는 작품 같다. 아니 모든 사람들의 염원하는 진정한 소통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인터액티브 아트는 몇 년 안에 우리에게도 더 익숙한 미술 장르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사비나미술관 http://www.savinamuseum.com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전화 02-736-4371 팩스 02-736-4372 입장료 2000원 고교생 이하 1000원 월요일 휴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종로 경찰서 맞은편
기사최종편집일: 2023-06-22 22: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