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푸마(Puma)’ 플랫폼으로 불리는 AMD의 새로운 모바일 플랫폼은 비록 5세대나 지난 인텔 센트리노에 비해서는 그 출발이 늦었지만 노트북 PC 시장에서 입지가 그리 넓지 못한 AMD로서는 적어도 ‘나쁘지 않은’ 첫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푸마 플랫폼은 최고 수준의 내장 그래픽 코어 포함 칩셋이 주로 눈길을 받았다. 확실히 푸마 플랫폼의 3D 성능 및 멀티미디어 기술은 별도의 보급형 그래픽 프로세서와 비교해도 뒤쳐질 것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경쟁사의 기술보다 한 세대 앞서 있다 말할 만 하다. 그렇지만 푸마 플랫폼이 칩셋만 바꿔 그래픽 성능만 높인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큰 반응과 기대를 불러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픽에 가려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푸마 플랫폼에서 CPU야 말로 가장 많은 변화를 거친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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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가 새 CPU에 거는 기대는 이름에서부터 묻어난다. 그 동안 모바일 CPU의 코드명이 조금은 촌스럽다는 느낌이었지만 이번에는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날개를 단 ‘그리핀(Griff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스크톱용 CPU의 기술을 모바일용으로 약간씩 고쳐 쓰던 AMD가 데스크톱 PC용 CPU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첫 번째 시도, 그것이 튜리온 X2 울트라(Turion X2 Ultra)다.
■ 플랫폼이지만 꽉 막히지 않아
푸마 플랫폼은 인텔 센트리노와 마찬가지로 CPU, 메인보드 칩셋, 무선 LAN으로서 이뤄지지만 사실 새로울 것은 없는 패키지다. 메인보드 칩셋은 데스크탑 PC 시절부터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AMD 780G를 바탕으로 노트북 PC에 맞춘 작은 변화만 준 것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널리 검증된 제품이다. 원래부터 AMD 7 시리즈 칩셋의 전력 소비량이 당장 노트북 PC용으로서 써도 될 정도로 작은데다, AMD M780은 노트북 PC에 맞게 그것을 더 줄인 모델이다.
무선 LAN 역시 AMD에서 마땅한 제품을 갖지 못한 만큼 802.11n 규격 무선 LAN 어댑터 가운데 브로드컴, 아데로스 등 종전 서드 파티 무선 LAN 어댑터 제품을 인증하는 식으로 쓴다. 어찌 보면 ‘지조가 없다’고 할 정도로 푸마 플랫폼은 너무나 많은 설계의 자유를 노트북 PC 제조사에게 안겨준다. 이는 노트북 PC 시장에서 아직 탄탄한 기반이 없는 AMD 입장에서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텔 센트리노가 인텔이 정한 숨막힐 정도의 틀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면 푸마 플랫폼은 그 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실용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사실상 가장 강력한 고정 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튜리온 X2 울트라는 푸마 플랫폼을 들여다 보려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튜리온 X2 울트라의 변화를 알아야 칩셋의 변화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모험보다 안정화에 주력
보통 새로운 아키텍처를 쓰게 되면 CPU 브랜드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AMD도 아키텍처를 K7에서 K8로 바꿨을 때 데스크톱은 ‘애슬론 64’, 노트북 PC는 ‘튜리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K10 아키텍처 모델에는 ‘페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튜리온 X2 울트라는 끝에 ‘울트라’라는 글자가 붙을 뿐 튜리온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튜리온 X2 울트라의 CPU 기본 아키텍처는 페넘 X3/X4에서 선보인 K10 아키텍처가 아닌 K8 아키텍처다. 물론 K10 아키텍처의 초기 코드명이 ‘K8L’일 정도로 두 아키텍처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K10 아키텍처 CPU 코어가 더 좋은 성능을 보여준다는 점은 증명된 만큼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AMD도 이런 점을 모르지는 않지만, 튜리온 X2 울트라에 K10 아키텍처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바로 K10 아키텍처 CPU 코어가 아직 노트북 PC에 쓸 정도로 안정화/최적화가 이뤄졌다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트북 PC용 CPU는 발열과 전력 소비량에 매우 민감한 만큼 전력 소비량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안정성이 검증된 기술만을 골라 쓴다. 노트북용 CPU는 데스크탑 PC보다 더 보수적으로 설계한다고 볼 수 있다. AMD는 이 점에서 K10 아키텍처 CPU 코어가 노트북 PC용으로서 쓰기에 아직 덜 다듬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코어 기술과 칩셋 등 많은 것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더욱 무리다. 인텔도 센트리노 플랫폼을 여러 세대 내놓았지만, 새로운 CPU 코어를 이전 세대 플랫폼에 내놓아 검증을 거친 뒤, 그 CPU(또는 부분 업그레이드 모델)를 칩셋과 LAN 기술을 바꾼 새 플랫폼에 옮겨 담는 방식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는 ‘혁명’은 만일 문제가 생길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서 지기 쉽다. CPU와 칩셋을 모두 새 기술로 만들면 생산 비용이 올라가는 문제도 있으니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CPU와 칩셋을 모두 바꿔야 하는 AMD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새로운 아키텍처 대신 검증된 K8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노트북 PC용으로서 새로운 기술을 더해 나가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 결정에는 K8 아키텍처가 여전히 성능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도 작용했다.
■ K8 코어, K10 기술로 매만져
튜리온 X2 울트라는 종전 튜리온 64 X2에 쓰던 K8 아키텍처를 그대로 쓴다. 그렇지만 튜리온 X2와 같은 CPU는 결코 아니다. 튜리온 64 X2가 애슬론 X2의 기술을 거의 그대로 줄여 만든 CPU였다면, 튜리온 X2 울트라는 지금의 애슬론 X2와 같은 CPU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다르다. CPU 코어 아키텍처만 K8일 뿐, CPU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는 페넘 프로세서에 들어있는 기술을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특히 전력 관리에 대한 기술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모바일 프로세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
튜리온 X2 울트라는 CPU 코어에 메모리 관리, 시스템 버스, CPU 기타 제어 등의 기존 노스 브릿지가 하던 역할을 하나로 묶은 CPU다. 코어 자체는 K8 아키텍처로서 변화가 없을지라도 노스 브릿지 역할을 하는 회로가 업그레이드되어 노트북 PC용 CPU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지금 팔리는 대부분의 데스크탑/노트북 PC용 CPU는 전압과 속도를 조정해 전력 소비량을 억제하는 기술이 들어간다. 조금 더 최신 모델에는 CPU 코어의 속도를 점유율에 따라서 다르게 하여 더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기술도 들어간다. 그렇지만 이런 CPU도 CPU 코어에 주는 전기는 똑같게 하는데 이 방식은 낮은 속도를 내기에 불필요할 정도의 전기를 보내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효과를 낮춘다. 튜리온 X2 울트라는 두개 코어에 보내는 전기의 전압을 각각 다르게 할 수 있도록 전원 회로를 이중으로 바꿨다. 전압이 낮아지면 같은 속도를 내더라도 더 전력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또한 CPU 코어 말고도 노스 브릿지 회로만을 관리하는 전원 회로가 따로 들어간다. CPU를 아예 쓰지 않는 대기 상태에 들어갈 때에도 메인보드 칩셋의 기능은 작동해야 하는데, 칩셋 기능의 일부인 노스 브릿지 회로를 담은 튜리온 X2 울트라는 이런 상황을 생각해 CPU가 낮잠을 잘 동안에도 노스 브릿지 회로만 따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CPU를 쓰지 않을 때에도 노스 브릿지 회로만을 위해 CPU의 전원 회로의 일부를 돌려 전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
■ 메모리 관리 탁월
메모리 컨트롤러 역시 페넘 X4에 들어간 것과 같은 기술을 받아들였다. 메모리 컨트롤러를 PC2-6400에서 PC2-8500 규격으로 한 차원 높이고, 메모리 컨트롤러를 한 개에서 두 개로 늘린 것은 종전의 튜리온 64 X2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페넘과 쿼드코어 옵테론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 페넘은 메모리 구성 상황 및 옵션 설정에 따라서 메모리 컨트롤러 두 개를 한 조로 묶어 메모리 두 개를 128비트 듀얼 채널로서 묶어 관리하는 종전 방식(Ganged Mode)과 두 메모리 컨트롤러가 메모리 하나씩을 잡고 맞춤형 관리를 하는 새로운 방식(Unganged Mode) 가운데 하나를 쓴다.
튜리온 X2 울트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서 메모리를 관리하는데, 두 방식 모두 듀얼채널 기술인 점은 같지만 두 메모리 컨트롤러가 각각 하나의 메모리를 잡고 관리하는 방식이 종전 듀얼채널 관리 방식보다 불필요한 데이터 읽기/쓰기가 줄어들어 효율성이 좋다. 그밖에 인텔 코어2 듀오에서도 큰 효과를 본 하드웨어 방식 메모리 프리페처(Prefetcher)로 CPU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미리 가져오기 때문에 데이터가 없어 CPU가 잠시라도 작업을 멈추지 않도록 한다.
CPU와 메인보드를 잇는 하이퍼트랜스포트(HT) 버스 속도 역시 페넘과 같은 HT 3.0 규격으로서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종전 1.0 규격을 쓰는 튜리온 튜리온 64 X2는 기껏해야 1,600MHz의 속도를 냈지만, 튜리온 X2 울트라는 그 속도를 두 배 이상인 3,600MHz까지 끌어 올렸다. 종전 튜리온 64 X2도 CPU와 칩셋 사이의 병목 현상이 적지만, 튜리온 X2 울트라는 훨씬 많은 데이터를 주고 받게 되어도 병목 현상 걱정이 없다. 이 때문에 칩셋 역시 HT 3.0 규격에 맞는 AMD M780 시리즈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렇게 CPU 코어를 뺀 나머지 부분에 페넘 프로세서에 쓰인 기술을 넣은 결과 튜리온 X2 울트라는 ‘코어만 튜리온, 나머지는 페넘’인 CPU가 되었다. 아직 노트북 PC용으로서 검증이 이뤄지지 못한 K10 아키텍처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나머지 부분은 페넘 X4에서 쓰인 최신 기술인 만큼 종전의 튜리온 64 X2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성능 향상을 느낄 수 있다.
■ 저가부터 고급형까지
현재 AMD가 발표한 튜리온 X2 울트라는 총 네 종류다. ZM 시리즈로 불리는 이들 CPU는 ZM80/82/84/86으로서, 기본적으로 작동 속도만 2.1GHz를 기준으로 100MHz씩 빨라진다. ZM80의 전력 소비량이 32W로서, 다른 모델의 35W보다는 조금 적다는 점을 빼면 튜리온 X2 울트라의 기본 제원은 속도를 빼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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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 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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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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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슬론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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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리온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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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리온X2 울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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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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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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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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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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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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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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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 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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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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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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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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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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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2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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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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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2-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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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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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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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트랜스포트 클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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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G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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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G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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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G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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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G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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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트랜스포트 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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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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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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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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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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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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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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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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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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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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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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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ate (최소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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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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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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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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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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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ates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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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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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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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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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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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er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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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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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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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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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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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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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D 가상화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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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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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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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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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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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온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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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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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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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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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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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K8 아키텍처를 쓰는 애슬론 X2는 이미 보급형 모델도 2.6GHz부터 시작하니 튜리온 X2 울트라의 최대 속도인 2.4GHz도 빠르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CPU 아키텍처를 뺀 나머지 부분이 페넘 X4 수준으로 발전한 만큼 같은 속도의 애슬론 X2와 튜리온 X2 울트라를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또한 튜리온 X2 울트라는 2차 캐시 메모리 용량을 애슬론 X2 또는 튜리온 64 X2의 두 배 수준은 2MB로 끌어 올렸다. K8 아키텍처 자체가 2차 캐시 메모리를 그리 많이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할 때는 2차 캐시 메모리의 존재가 성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노트북 PC용 CPU가 데스크탑 PC용 모델보다는 작동 속도가 한 단계 낮다는 것을 생각하면, 튜리온 X2 울트라가 인텔 코어2 듀오 또는 펜티엄 DC급의 중급형 모델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비록 튜리온 X2 울트라가 주역이기는 하지만, 이밖에도 그리핀 코어 프로세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2차 캐시 메모리를 1MB로 줄인 ‘튜리온 X2’, 그리고 싱글 코어 CPU인 ‘노트북 PC용 셈프론’ 역시 새롭게 태어났다. 튜리온 X2는 RM-70과 RM-72로 불리는 두 모델이 있으며, 노트북 PC용 셈프론은 SL-40 한 모델뿐이다. 튜리온 X2 울트라가 주역임에는 분명하지만, AMD CPU가 적지 않은 사용자를 이끌었던 보급형 CPU 분야 역시 새로운 기술을 더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를 한 만큼 AMD CPU를 쓴 노트북 PC의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글 : 김준연 / 아이클럽 온라인팀장
다나와 최호섭 기자 notebook@dana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