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덕수궁에서 열린 ‘서울 북 페스티벌’ 현장.
인터넷, 스마트 폰 시대가 열리면서 전자책 등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읽을거리가 많아졌지만 종이를 넘기며 느끼는 책의 매력이 아직도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다. 그렇다면디지털 시대를 사는 이 시대에 종이책이 갖는 매력이 무엇일까. 현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들어봤다.
 | 지난 7~9일까지 덕수궁에서는 서울북페스티벌이 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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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9일까지 사흘간 덕수궁에서는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서울북페스티벌’이 열렸다. |
 | 서울북페스티벌이 열린 덕수궁에서는 출판사 부스가 마련돼 20~50%로 저렴한 가격으로 새책을 살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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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페스티벌이 열린 덕수궁에서는 출판사 부스가 마련돼 20~50%로 저렴한 가격으로 새책을 살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
“독서를 통해 읽는 지식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값지고 풍부하잖아요.”
주위에서 자신을 독서광이라고 부른다는 고등학생 백상엽(19)군이 말했다. 그는 바쁜 수험생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2~3권씩을 짬짬이 읽으며 공부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저도 스마 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 너무 사용하다 보면 바보가 된 느낌이 들어요. 인터넷에서 얻는 지식은 빠르고 간편하고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겉핥기식인 것 같거든요. 요즘엔 한 분야의 전문가를 원하는 시대인 만큼 시대에 발 빠르게 대처하려면 독서를 통해 꾸준히 지식을 습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등학생답지 않은 당찬 발언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스마트 폰에 얽매여 주위 친구들 번호는 물론 신문을 펼쳐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기 때문이다.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다시 찾기 위해 서둘러 책을 판매하는 부스로 향했다.
100여 개 가까이 되는 출판사 부스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적게는 15%부터 많게는 50%까지 할인된 가격에 다양한 책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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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종이책이갖는 매력을 관람객들은 활자가 주는 여유로움과 책과 소통하는 상호작용을 꼽았다. |
 | 행사중인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읽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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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중인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읽으며 관람객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있다. |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김 모 씨는 “디지털 시대이다보니 책 판매량이 점점 감소하는 것 사실”이라며 “요즘엔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의 시대다. 어린이들에게는 움직이는 그림동화책의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자책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은 바로 ‘문학’ 분야라고 한다. 시와 소설은 활자가 주는 안정감과 여백의 미에서 느끼는 여유로움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최 모 씨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받아보면 인터넷에서 누구나 검색하면 나오는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며 “두 세권의 책만 읽어도 조금은 다르게 해석하고, 작성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요즘 전공 리포트를 낼 때 꼭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할 정도라고 했다.
“전공공부를 하면서 개념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지와 현실에서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종이로 넘기면서 습득하는 지식은 오랫동안 자기 기억 속에 남고, 뭔가 알아가며 깨닫는 즐거움이 있는데 요즘 친구들은 그런 즐거움을 잊고 사는 거 같아요.”
 | 서울북페스티벌이 열린 덕수궁 정관헌에서는 관람객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했다. 정관헌은 고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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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페스티벌이 열린 덕수궁 정관헌에서는 관람객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했다. 정관헌은 고종이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던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
도심 한복판인 고궁에서 느끼는 북 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은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책을 읽으며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띄었다. 바로 ‘정관헌’이다. 이곳은 고종황제가 차를 즐기고 음악을 듣던 곳으로 동양 및 서양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문화재다.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있는 중년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교사를 은퇴한 정모씨에게 종이책의 매력을 묻자 “마우스로 넘기는 책장과 손으로 넘기는 책장, 손맛이 다르지 않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그는 “전자책, 인터넷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책들은 편리하긴 하지만 그렇게 얻는 지식은 내 것이 될 수는 없다.”며 “새하얀 도화지 같은 종이에 수놓은 활자를 넘기는 즐거움이 가장 큰 것 같다.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 가슴 졸이며 읽는 것이 제맛”이라고 강조했다.
10년째 쇼핑몰을 운영 중인 안윤경(36)씨도 ”매일 인터넷과 사투하며 일을 하지만 책만큼은 꼭 돈을 주고 사서 읽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물론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자책은 구매도 저렴하지만 쉽게 읽혀지지가 않거든요. 매일 모니터를 보면 일하는 직업이라서 그런지 쉴 때만큼은 활자를 통해 여유를 갖고 저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저는 책은 꼭 종이책을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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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작은 도서관 ‘궁애서’, 책을 읽으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
 | 덕수궁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도 궁애서에 앉아 책에 푹 빠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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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을 찾은 외국인 관람객도 궁애서에 앉아 책에 푹 빠져 있었다. |
덕수궁 곳곳에는 문화재 공터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덕수궁 내에 마련된 관람객들을 위한 작은도서관 ‘궁애서’를 찾았다. 눈앞에 눈을 맑게 하는 화려한 폭포수가 흐르고 있었고, 작지만 가끔씩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귀는 노랫소리까지 이보다 더 좋은 휴식공간이 또 없어 보였다.
이곳에서 남편과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주부 신애라(47)씨는 “제가 연애할 때는 책 제목이나 내용으로 마음을 표현하며 선물하던 시절이었다.”며 “종이책은 그런 향수와 추억이 묻어나는 보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시를 좋아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보면 그때 느꼈던 낭만도 느껴지고요. 요즘 같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이 때론 꿀맛 같은 휴식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전 여전히 종이책의 매력에 푹 빠져 있어요.”
대학생 소지영(25)씨는 “책은 인류가 축적해온 문화유산 같은 존재”라며 “전자책은 편리하긴 하지만 종이책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요. 종이책은 읽어나가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종이냄새, 다음페이지에 이어지는 내용들에 대한 궁금함이 더해져 읽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애타게 하는 것. 종이책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깊어가는 가을, 종이책을 넘기며 오는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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