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 조회…안전, 형평, 돌봄 등 한국교육 열쇠말 풀어내야
한국 교육은 ‘운전하면서 수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
김상곤 전 교육감 사퇴이후 처음 열린 도교육청 전체 직원이 모인 4월 1일 아침 월례 직원조회. 교육감 사퇴, 6·4 교육감 선거에 따라 달라질 경기교육 방향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우려를 반영한 듯 결원이 거의 없이 500여 직원이 강당을 메웠다. 고경모 교육감 권한대행이 마이크를 잡자 직원들은 꼼꼼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고 권한대행은 ‘교육 분야에서 경제학자의 안경을 쓰고 어슬렁거렸다’는 우회적 표현으로 짧은 교육계 경력을 언급하면서도, 경기교육과 한국교육이 처한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간결하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고 권한대행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혁신과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임을 분명히 했다.‘따뜻한 학습, 행복한 성장’이라는 2014년 경기교육비전과, 한국교육이 지향해야 할 8가지 열쇠말을 제시하며 이를 위한 흔들림 없는 개혁을 강조했다.
도교육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김상곤 전 교육감의 임기 중 사퇴에도 불구하고, 경기도교육청이 큰 혼란 없이 정책의 일관성과 행정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에는 고 권한대행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혁신교육을 특정 정책이 아니라 우리 교육의 보편적 지향으로 바라보면서 이전 정책과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앴다는 평가인 셈이다.
고경모 권한대행은 재정경제부와 금융정보분석원을 거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인사관리행정관,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총괄과장 등 주로 경제부처에서 일하다가 2010년 교육부(구 교육과학기술부)로 옮긴 뒤 정책기획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작년 4월 경기도 부교육감으로 부임해 1년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음은 고경모 교육감 권한대행 직원조회 발표 전문입니다.
경기도 교육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경기도교육청에 온 지 이제 열흘만 있으면 일 년이 됩니다.
경제부처에서 구) 교육과학기술부로 전입한 날이 2010년 1월 3일이었으니, 그 때부터 셈해 보면 4년3개월이 되었습니다.
교육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한 시간이 갓 4년을 넘었으니, 여기계신 대부분의 직원보다도 교육관련 경력이 짧다고 하겠습니다.
그 짧은 경력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문제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주로 정책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재정을 다루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육 분야에서 경제학자의 안경을 쓰고 어슬렁거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conomic way of thinking in Education field‘의 의미에 대하여
경제학적 관점은 모든 행위에는 ‘질서 내지 순위’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즉, 합리성을 중시하고, 늘 어떤 선택지가 주어지든 합리적으로 택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합리적 행동이라 할 때는
1) 선택해야 할 대안들을 마주할 경우 언제든 결정을 내릴 수 있고,
2) 대안들 간에 비교가 가능하고 모든 대안에 순위를 매길 수 있으며,
3) 선호순위가 대안이 바뀌더라도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하며
4) 언제든 선호순위가 가장 높은 대안을 선택하며,
5) 동일한 대안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동일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통상 가정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인간을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제 얘기를 듣고 지금 당장 느끼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이나 인간들의 행동은 항상 ‘경제적 인간’의 행동원칙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러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합리성 말고도 삼아야 할 잣대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이러한 경제학적 시각은 그것만 옳다고 독단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육의 합리성, 효율성, 효과성을 고려하여 균형된 판단을 내리는 데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도 그런 자세로 문제를 보고 처리하고자 노력합니다.
2014년 한국교육의 Keyword에 대하여
먼저, 2014년 새롭게 내세운 경기교육의 비전은 ‘따뜻한 학습, 행복한 성장’입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기회를 보장하며, 배움이 즐겁고 그를 통해 우리 학생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고 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2014년 다섯 가지 정책목표를 내세우고 각 과, 국, 실별로 세부 업무계획을 세워 신학기 준비를 철저히 해 주셨습니다.
첫째, 혁신학교 일반화 확산기
둘째, 민주적 학교공동체 도약기
셋째, 교육과정 재구성 심화기
넷째, 학교행정시스템 전환기
다섯째, 현장지원중심 재편기라는 목표(Goal, Aim)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교육청이 일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현장의 고충과 어려움도 살펴야 하고, 국가교육과정에 의한 논의에도 참여하고 협의하고 조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 만큼 도교육청 직원들은 땅바닥에 굳게 다리를 딛고 서서 따뜻한 가슴을 갖고 현장을 대하며, 위로는 냉철한 머리로 중앙정부, 도청, 기타 외부기관들과 논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년도 한국의 교육 키워드를 살펴보는 것도 균형되고 보다 긴 시계(視界)를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 Safety(안전)입니다. 학교폭력, 교통과 시설 재난 위험, 더 나아가 가정경제불안 등으로 인한 학업중단의 위험 등 제반 위험으로부터 우리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켜 내야 합니다.
둘째, Equality(형평)입니다. 교육격차 해소, 기회의 균등 또는 교육 양극화 해소라는 요구로도 표현됩니다. 교육을 복지의 일환으로 보고 그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학생, 소외계층에 대한 정당한 교육기회의 제공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 사회처럼 교육현장에서도 ‘갑을관계’의 개선이 법보다 문화로 새롭게 세워져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Care(돌봄)입니다. 이미 시작된 유치원과정에 대한 학비 지원과 누리과정에 이어 금년 3월부터는 초등학교의 기능에서 돌봄 비중이 한층 강화되고 있습니다. 맞벌이가 느는 상황에서 학교가 다른 돌봄 시설보다 믿음직하다는 인식이 더해져 학교에 대해 돌봄 요구가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
넷째, Link(연결)입니다. 네트워킹, 융합, 조합이란 이름으로도 현상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미 교육분야에서도 교육과정의 통합, 학제간 융합의 요구가 증대하고 있습니다. 일반계고와 특성화고간의 균형, 인문계와 자연계의 통상적인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도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기기가 늘고 정보의 양이 급증함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선택하고 가공하여 활용하는 정보 리터러시에 대한 필요도 커지고 있습니다. STEM career와 이를 취득하기 위한 교육과정도 과학, 수학, 엔지니어링, 기술과목 따로따로 분절해서 가르치지 말고 통합하고 연관지어 가르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섯째, Intelligence(지혜)입니다. 지식보다 높은 개념입니다. 인문교양, 독서교육 및 인성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동시에 집단지성을 위한 정보공유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섯째, Reduction(경감)입니다. 시험부담의 축소, 특히 블랙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입시부담의 경감, 교육비부담과 사교육비 부담에 대한 축소 요구는 한층 거세지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행정업무경감을 위한 시스템의 구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곱 째, Young mind(창의)입니다. 혁신, 창의적 아이디어, 새로운 발상과 감각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의 창의지성교육, 창업교육의 강화, 진로탐색을 통한 자기주도적 진로 결정 등이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응입니다.
여덟째, Local(지방)입니다. 중앙주도형 정책과 시대가 퇴조하고 현장이 중요해 집니다.
제 자신도 교육을 현장에 맡겨야 하고,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의 손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패 여부는 공고한 신뢰의 회복과 구축에 있습니다. 학교와 교사에 불신을 각인시켜서는 현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 대한 신뢰, 교사들의 지적·정서적 자질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선생님들 스스로도 신뢰를 받기에 부족한 점은 없는지, 또 그 원인은 무엇인지 음미하고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자세
교육문제 해결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차를 정비소에 맡기 듯 할 수 없습니다. 얘들에 대한 가르침은 한 순간도 쉬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마치 “운전하면서 수리‘해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입니다.
기존 조직과 교사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학생들의 배움과 교육성취도를 높이고, 창의적 기운이 충만하고 일하기 좋은 학교환경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수혈 받아서, 아니면 모두들 장기간 연수를 보내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사람과 시설, 예산의 범위 안에서 해내야 합니다.
교사들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해서 새로운 교육방법을 고안하고, 실험하고 논의하고 연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창의성은 페이스북의 쥬커버그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성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콘텐츠상의 예술적인 창의성입니다. 수업에서 독특한 매력과 장악력을 발휘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학생을 변화시키는 장인과 같이,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야 합니다. 분석-암기-문제풀이와 같이 대량생산체제에 적합한 산업일꾼을 길러내는 공장식 교육시스템, 그런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더 이상 잔존해서는 안됩니다.
저도 꿈을 꿉니다.
가끔씩 이렇게 달라졌으면 하는 수업모습을 그려봅니다.
모든 얘들이 몰입하는 수업, 배움으로 눈이 초롱초롱하고 선생님이 가르치면서 신바람이 나는 교실. 여러분 대부분들은 어릴 적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으로 인해 혜택을 받은 세대입니다.
우리가 받았던 교육을 생각하며 달라진 수업을, 교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혁신과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PISA 성적, 외국의 두루뭉술한 칭찬에 만족하고 머물러서는, 인재를 중시하고 교육투자에 앞장서는 다른 나라에 계속 미치지 못하거나 심지어 추월당할 수도 있습니다.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합니다. 과거 못 살고 헐벗은 시절, 춘궁기와 보릿고개 때문에 잔인한 것이 아니라, 그 시를 쓴 이는 흐드러지게 맑고 좋은 계절에 내가 못 미치고 어울릴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신학기를 별 탈 없이 맞이하도록 힘써 주신 모든 직원 한분, 한분께 감사드립니다. 교육감대행을 하고 있는 저와 함께 앞으로 두 달 더 항해를 해야 하는 여러분 모두가 주변의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거기서 느껴지는 그 생동의 기운을 몸에 받아 교육현장을 바꿔 나가는 데 함께 노력해 주시길 당부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4월1일
경기도교육감 권한대행 고경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