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연극배우는 뇌병변 장애 2급인 안희정 씨(45) 입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합동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희정 씨의 본업은 사실 연극배우가 아닙니다. 장애인 전문 방송에서 영상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퇴근 뒤 틈틈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기 연습을 한 끝에 연극무대 주연으로 선 겁니다. 장애를 딛고 연극배우가 된 희정 씨가 처음부터 이렇게 도전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몸이 아프고 연약했던 희정 씨에게 학교는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걷지도 못했던 희정 씨가 어머니 등에 업혀 처음 초등학교를 등교하던 날. 수업을 위해서 어머니가 교실 밖을 나가자 희정 씨는 대성통곡을 하며 어머니를 붙잡았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있는 교실에서 수업에 방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담임이었던 이종숙 선생님은 희정 씨가 어머니와 짝꿍이 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때부터 희정 씨와 선생님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이종숙 선생님은 희정 씨의 첫인상을 "몸도 조그맣고 서 있거나 말도 못하는 아이"로 기억합니다. 이 선생님은 "당시 특수학교가 없던 상황에서 이론으로만 배운 특수교육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래, 한번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희정이를 들여다봤고, 반짝이는 눈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이 선생님은 "희정이가 말을 해도 사실 잘 못 알아들었지만, 눈을 보니 소통이 됐다. 그렇게 해서 교육이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선생님의 교육은 '헌신'과도 같았습니다. 희정 씨는 "이 선생님은 어머니와 잠시 떨어져 있을 때면 침이 흥건한 턱받이도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갈아주었고, 아파서 결석하는 날이 많았던 나를 위해 방과 후 특별 보충수업도 해주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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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끝낸 뒤 희정 씨가 선생님과 찍은 사진 | | |
연극을 끝낸 뒤 희정 씨가 선생님과 찍은 사진
희정 씨의 홀로서기를 도와준 이 선생님은 1학년을 마친 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고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 건 성인이 돼 어렵게 선생님을 다시 찾은 희정 씨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20년 만에 희정 씨를 다시 만나게 된 이 선생님은 "바지밖에 못 입던 희정이가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찾아왔는데 제자가 성장한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합니다. 이후 희정 씨는 공연할 때마다 선생님을 특별 손님으로 초대하고, 선생님은 교장으로 퇴직한 뒤에도 희정 씨를 찾아 격려하는 등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하던 날도 이 선생님은 희정 씨의 연습실에 찾아왔는데요. 열연하는 희정 씨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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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육부 주관 ‘내 마음의 선생님’ 공모 시상식. 맨 왼쪽에 안희정 씨, 이종숙 선생님 | | |
KBS-교육부 주관 ‘내 마음의 선생님’ 공모 시상식. 맨 왼쪽에 안희정 씨, 이종숙 선생님
희정 씨는 이 선생님과의 특별한 사연을 사진에 담아 KBS와 교육부가 함께 준비한 '내 마음의 선생님'에 공모했고 대상을 받았습니다. 희정 씨는 이 선생님을 "나를 일어날 수 있게 해 준 선생님"으로, 이 선생님은 희정 씨를 "교직 생활 46년 간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해 준 제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마주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는데요. 37년 전 함께 했던 1년의 시간으로 20년 넘게 끈끈한 정을 나누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스승의 날은 지났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마운 선생님께 저도 안부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