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용이건 극장용이건 국내에 소개되는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일본과 할리우드의 것이다. 특히 극장판의 경우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치는 부끄러운 수준. 지난해 미국과 공동제작한 ‘파이스토리’가 선보였지만 주목받지 못했고 ‘아치와 씨팍’은 독특한 시도는 좋았으나 성인용이라는 한계를 지녔다. 그런 가운데 ‘마리 이야기(2001)’ 이성강 감독의 신작 ‘천년여우 여우비’(제작 옐로우필름)와 1976년작 ‘로보트 태권V’의 디지털 복원본이 개봉된다. 두 작품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에 대한 가늠자 역할을 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천년여우 여우비=이성강 감독은 ‘마리 이야기’로 2002년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흥행은 못했지만 이 작품은 그동안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자랑거리였다. 그런 이 감독이 3년간 준비한 만큼 ‘천년여우 여우비’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최근 공개된 작품을 보면 기존의 국내 애니메이션과 차별성을 갖는다. 일단 구미호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여우비’ 캐릭터는 친근하면서도 새롭다. 사람 나이로 열 살인 여우비는 호기심 많은 표정과 툴툴거리는 성격이 특징인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다. 처음 사귄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도 흡인력을 갖는다. 또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로 여우비와 함께 살아가는 ‘요요’ 일당을 기저귀를 찬 아기 형상으로 그린 점도 기발하다. 일본에서 작업해온 양방언 음악 감독의 주제곡들도 괜찮고 ‘여우비’ 목소리를 연기한 손예진의 실력도 기대 이상.
그러나 아쉬운 것은 탄탄하지 못한 시나리오. 한국 애니메이션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전하다. 초반 생기있던 내용들은 뒤로 가면서 옆길로 빠지는 인상을 주며 요요 일당을 비롯해 그림자탐정,구름영혼,토끼 모양의 영혼 지킴이 등 캐릭터들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사라진다. 25일 개봉.
◇로보트 태권V=“아버지의 영웅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자”는 홍보 문구처럼 ‘로보트 태권V’는 197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중년들에게는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1976년 7월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18만 관객을 모았고 그 해 한국 영화 중 관객 동원 2위를 기록했을 정도. 이후 필름 유실로 한동안 잊혀졌다가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발견된 복사본을 디지털 복원작업으로 되살리면서 극장에 걸리게 된 것. 특히 독점사업권자인 영화사 신씨네는 아예 ‘주식회사 로보트태권브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앞으로 애니메이션,게임,뮤지컬,장난감,테마파크 등으로 캐릭터를 확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번 복원판은 18일 전국 150개 스크린에서 개봉된다. 하지만 30년도 더 지난 작품인 만큼 내용이며 그림,캐릭터들을 요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7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질 정도. 화려한 외국 작품들에 길들여진 어린 관객들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시나리오의 세련미 및 완성도가 여전히 문제”라면서 “어린이 관객을 겨냥할수록 스토리가 탄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황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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