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삼매 빠진 아이들… 글 '술술' 토론 자신감 '빵빵'
» 김민정, 효주(왼쪽부터), 문주양과 이현숙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이씨의 집에서 독서모임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환히 웃고 있다.
눈길 끄는 가정독서모임들…논술학원? 난 ‘독서토론’ 모임 간다
고3인 장벼리, 박재현군, 조은선양, 중3인 김송요양, 중1인 장한솔군은 매주 일요일 서울 신림3동 벼리군의 집에 모인다. 한 주 전 미리 선정한 책들을 읽고 와서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인다. 지난 30일에는 신동엽 시인과 전봉준을 주제로 격론을 벌였다. 옆에서 참관하던 벼리군의 어머니 백화현(48)씨는 “보고서 내용이나 토론 수준을 보면 이제 교사인 나를 능가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 7월. 두 아들과 함께 책읽기 활동을 해오던 백씨가 주변에 사는 아이 셋을 끌어모았다. 이름하여 ‘가정독서모임’. 그림책을 던져주고 알아서 읽고 얘기를 나눠보도록 했다. <돼지책> <지각대장 존> 등 저학년들이 읽는 쉬운 책들이어서 아이들이 쉽게 따라왔다. 어느 정도 재미를 붙이자, 주제별 책읽기를 시도했다. 과학, 정치, 역사, 문화 이런 식으로. 가령 소외와 장애를 다룬 <오체불만족> <세상은 선물 한 개>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었다> <우리 누나> 등을 한꺼번에 죽 읽어나갔다. 그리고 각자 줄거리 요약하고 질문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답을 써서 매주 모여 토론을 벌였다. 은선양은 “1년 정도 하니까 책을 읽는 힘이 생겼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는 데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1주일 전 읽을 책들 선정 내용 요약 질문지 작성 자유롭게 발표하고 토론
» 송경영 교사와 장벼리, 박재현군(왼쪽부터)이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구 신림4동 장군의 집에 모여 채만식의 <탁류>, <레드메이드 인생>, 양귀자의 <숨은꽃> 등을 읽고 토론하며 1박2일 일정으로 군산과 김제 지역에서 펼쳐질 독서기행을 준비하고 있다.
2005년 여름방학 때 이들은 독서기행을 떠났다. 장소는 전남 강진과 해남. 주제는 실학사상이었고, 정약용을 다룬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가는 김에 김영랑, 윤선도 생가도 들러볼 요량으로, 이들의 작품도 미리 읽었다. 다녀온 뒤에는 갖가지 보고서를 만들어 발표를 했다. 백씨는 “독서기행을 계기로 아이들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독서기행은 이어졌다. 그해 겨울방학 때는 주실마을, 부석사, 소수서원, 퇴계 생가, 병산서원 등 경북 안동 지역을 돌아봤다. 물론 사전에 조광조, 퇴계, 이이에 관한 책과 동양철학과 유학을 다룬 책들을 섭렵했다. 2006년 여름에는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읽고 경남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을 둘러봤다. 지난 1~2일에는 채만식의 <탁류> <레드메이드 인생>, 양귀자의 <숨은꽃>, <신동엽 시집> 등을 읽고 1박2일 일정으로 군산과 김제 지역을 다녀왔다. 재현군은 “전봉준과 동학, 부소산성 등을 돌아보며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학때는 독서기행 하며 철학·역사 사고 틀 넓히고주제 맞는 영화로 재미더해
내년부터 대학에서 통합논술 시험이 치러지고 학교에서도 논술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가정독서모임’ 같은 논술동아리나 독서동아리가 주목받고 있다. 교사들도 아직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학생들끼리 모여 토론 모임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동아리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꾸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3~4명이나 5~6명이 한 모둠이 된다. 주로 일주일에 한두 번 모인다. 사전에 읽을 책을 미리 정하고, 내용을 요약한다든지 질문을 만들어 온다든지, 관련 내용을 추가로 알아온다든지 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다.
운영은 대체로 각자 준비해온 것들을 발표하고 그에 대해 토론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김송요양은 “수업이나 세미나 같은 딱딱한 형태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나의 의견도 개진하면서 진지하게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독서동아리는 체계적인 틀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자발적 참여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흥미와 참여도가 높다. 초등학생 3명으로 꾸려진 독서모임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이현숙(39)씨는 “논술학원에 보내면 억지로 끌려다니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글쓰기나 토론을 해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기 쉬운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가정독서모임이 읽은 책들
독서동아리는 또 자료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함으로써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상위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박정현 인천 관교여중 국어교사는 “혼자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계속해서 들으면 생각을 깊고 넓게 할 뿐 아니라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교재와 강의 중심으로 이뤄지는 학교나 학원 논술수업과 달리,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독서동아리 아이들은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서 만화나 비디오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가정독서모임’처럼 현장기행을 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입논술시험 대비를 목표로 내걸고 독서동아리를 꾸릴 경우 자칫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허병두 숭문고 교사는 “기본적으로 자발성을 갖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충분한 토론과 글쓰기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것이 특정 목표에 끌려간다면 학원 수업과 비슷해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김용진 동대부여고 교사는 “2~3년 꾸준히 할 생각으로 주변에서 뜻이 맞는 학생들이 모여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모임을 꾸리기 어렵거나 처음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교사나 학부모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다. 참관자 형식으로 교사나 학부모들이 참여하게 하면, 처음 모임 진행이 서툴거나 방향을 못잡아 헤맬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학교들도 ‘책읽기 바람’
학교에 관계 없이 원하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만들 수 있는 독서동아리와 달리, 학교 차원에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같이 꾸리는 독서토론모임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서울 도봉고의 경우 교사가 참여하는 독서토론반이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은 여러 과목 교사들이 공동으로 만든 교재를 활용한다. 교사들은 동아리에서 요청하면 관련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주거나 같이 토론을 벌인다. 인천 관촌여중도 이번 겨울방학부터 독서토론반이 꾸려지기 시작했다. 박정현 교사는 “방학 중에는 5명이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을 했는데, 개학을 하면 여러 팀을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촌여중은 5~10명을 한 팀으로 꾸려, 주로 방과후학교 형태로 독서토론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교사-학생 독서토론반 꾸려 선생님이 만든 교제로 토론 모임뒤 카페에 글 올려 공유
교사단체인 교실밖교사커뮤니티(eduict.org)에서는 단체 차원에서 독서토론반을 지원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2만여명의 회원 교사들이 나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 결성을 유도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26~27일 코엑스에서 열린 교육박람회에서 이 단체는 ‘바람직한 논술·토론수업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회를 열고, 독서토론반의 확대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학교 독서토론반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운영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서 선정-토론-글쓰기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먼저 학생들이 책을 읽은 뒤 간단한 감상을 적어오고, 책과 관련된 정보를 조사해 온다. 이어 모임에 참여해 자신이 조사해 온 자료를 발표하고, 제시되는 문제에 대해 자유 토론을 벌인다. 이 때 교사는 읽은 책과 관련 있는 책이나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하고 희망에 따라 선택해 감상하도록 한다. 모임 뒤에는 각자가 읽은 책의 내용이나 모임 토론 내용, 관련 자료들을 활용해 완성된 글로 쓴다. 다 쓰면 인터넷카페를 이용해 공유한다.
<한겨레신문 박창섭 기자님의 글에서 발췌
cool@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 뉴스클리핑은 http://webkidsnews.com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