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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훈이가 초등학교 때 일이다. 운동회 때가 되자, 각 팀별로 줄다리기와 배구, 이어 달리기 등 여러 가지 운동경기 팀이 꾸려졌다. 건훈이는 공부는 못했지만, 운동을 좋아했던 터라 배구선수로 뽑힐 수 있었다. 배구팀을 이끄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주장을 뽑으라고 했는데, 건훈이가 손을 들자 다른 한 아이가 반대를 했다고 한다. 이유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훈이는 그 일로 시무룩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포기했어?"
"네, 다른 아이가 주장이 됐어요."
"왜 포기했니? 잘 할 자신이 있어서 손을 든게 아니었어?"
"그랬지만, 다른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어요."
한 번도 공부를 못하는 것에 대해 잔소리 한 일이 없던 나는 처음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부를 못해서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건훈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다른것 까지 연력시키는 것 같아서였다. 공부 하나로 다른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이 씁쓸했다.
"건훈이가 공부는 못해도 운동도 잘 하고, 책도 많이 읽고, 다른 것들도 잘 하잖아. 공부를 못한다고 '난 공부를 못해서 다른 것도 못할 거야.'라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도 보여줘야 해. 공부는 건훈이가 하고 싶은 때가 되면 분명히 잘 할 수 있어. 건훈이처럼 열심히 살 줄 아는 사람은 분명히 공부도 잘한단다. 알겠지?"
내 말에 건훈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건훈이의 환한 얼굴을 보자, 나는 그제야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언젠가 리처드 브랜슨 회장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는 영국 버진 그룹의 창설자이자 총수인데, 그의 회사의 이름 버진이 말해주듯 사업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 사람이었다. 부자가 아니고 돈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마저 지독하게 못했다.
책을 읽는데 장애가 있는 선천성 난독증 환자였던 그는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이처럼 평범한, 어쩌면 평범함에도 못 미칠만한 조건의 그가 200개 이상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가 단 하나, 평범하지 않은 것을 가졌음을 알게 됐다. 그가 가진 단 하나의 자산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리처드 브랜슨의 어머니인 이브 브랜슨은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당시 흔치 않던 여성 파일럿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용사이기도 했다. 이처럼 적극적이고 활발한 여성이었던 이브는 그 아들에게도 같은 유산을 물려주었다.
"나는 아들을 부끄럼을 타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충분히 생각할 줄 아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키우려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 학업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은 소극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건훈이의 경우처럼 한 가지 잣대로 아이들을 줄 세우려는 분위기도 문제가 크다. 예나 지금이나 여러 잣대로 아이들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난독증에 시달렸던 리처드 브랜슨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의 평범치 않은 어머니는 열입골 살짜리 자신의 아들에게 돈을 투자해 창업을 하도록 했다. 그의 취미를 사업으로 연결해 보도록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리처드는 학생 잡지인 '스튜던트'를 발행했고, 레크드를 우편으로 판매하는 방식의 '버진 레크드'를 세웠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리처드는 어머니인 이브의 가르침대로 늘 새롭고 진취적인 방식으로 그의 사업을 일궈냈다.
나는 리처드 브랜슨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오히려 그의 어머니인 이브에게 반하고 말았다. 아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 정력적인 어머니의 모습, 그것은 내가 바라는 어머니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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