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자살을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를 둔 아버지입니다. 얼마 전에 집사람이 딸이 써 놓은 편지를 한 장 보여주면서 걱정을 하길래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편지에는 '살기가 싫다, 나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은 죽는 일뿐이다.' 등의 내용의 글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겨우 고 3짜리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평소에 딸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또래 친구들보다 좀 성숙하고 나이에 비해 성숙한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죽음을 생각합니까?... 집사람은 아이가 "죽음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인데, 왜 말리냐?"란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보기에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큰 스트레스 받는 곳도 없는것 같은데, 왜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많이 배우지 못한 아버지로서 어떻게 아이에게 말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딸 아이가 자살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딸이, 나이도 어린 딸이 자살을 생각하는 마음을 엿보셨을 때 아버지로서 참 놀라고,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불안한 마음도 드셨겠구요. 아버님 말씀대로 정말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죽음을 생각하다니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성숙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어쨌건 따님이 죽음과 관련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현 상황에서는 따님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따님이 죽음을 생각할 만큼 큰 스트레스 받는 곳은 없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런지도 잘 살펴보셔야 하겠구요. 혹시 부모님도 알지 못하는, 따님만이 혼자 속 앓이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말이죠. 따님과의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따님과 대화를 하실 때는, 부모님의 애타는 심정을 먼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고, 따님이 하는 말을 따님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이해해 주시는 심정으로 들으시면, 좀 더 솔직하고 원할한 대화가 될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는 벌써 죽음을 생각하는 따님이 원망스럽고, 기막힌 심정이시겠지만, 따님 입장에서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들어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따님 주위의 친구들, 담임 선생님 등을 통해서도 따님이 현재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따님이 자살할 만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밝혀진다면, 그 문제를 따님과 함께 해결해 나가시는데 노력을 기울이셔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따님을 탓하지 말고, 최대한 따님의 동반자 역할을 해 주시는 것이 따님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살 시도의 위험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겠지요.
자살은 쉽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지만, 예방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자살에 관해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자살하겠다''는 표현을 단지 위협이나 타인을 조종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실제로 자살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님께서 따님을 좀 더 예의주시 하시고,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대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을 너무 무시하셔도 안 되겠지만, 이미 자살을 결정해버린 게 아닌가하는 지나친 불안으로부터 부모님께서 벗어나시는 것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자살자들은 자신의 자살 의도를 주위에 알게 모르게 전달합니다. 자살자의 80%정도가 이러한 단서를 남긴다고 합니다. 아주 사소한 단서라도 발견될 경우, 자살의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고 예방적인 조치를 취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따님의 편지에서처럼,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등 언행에서 표현되는 자살 단서가 있는가 하면, 극심한 생활 상의 스트레스로 인해 내내 혼란스럽고 긴장된 모습을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이면 자살의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에 관한 몇 가지 단서만으로 자살할 것이란 단정을 내리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자살을 완벽하게 예견해주는 단서란 있을 수 없고, 그 단서들도 개인에 따라 매우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적인 맥락으로 봐서 따님이 과연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신중하게 살펴보시고 대처하셔야 할 것입니다.
전문 상담가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자살 문제에 대한 개입방법으로는 응급적 개입, 단기적 개입, 중/장기적 개입 방법이 있습니다. 따님의 경우엔 어떤 특정한 스트레스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주로 삶 자체에 대해 큰 의욕을 가지지 못하고 나름대로는 삶의 덧없음을 인식함에 따라 자살을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이런 경우, 자살 위험에 임박한 것으로 보고 응급적 개입을 하기 보다는 중/장기적 개입 방법으로 장기적으로 대처하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중/장기적 개입방법으로는 생활 환경의 변화에 초점을 둔 환경적 개입 방법이 있습니다. 환경적 개입 방법은 우선 따님이 처한 생활 환경을 면밀하게 조사, 분석해서 따님으로 하여금 고통과 불행을 유발하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확인한 후,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변화시키도록 따님과 함께 노력하시는 방법입니다. 전문적인 도움이 요청되는 부분이기도 하므로, 상담 전문가 선생님과 함께 이러한 방법을 실행해 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님이 지금 무엇이 힘든지,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 같이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길 바랍니다. 따님 스스로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를 찾게 되기 바라며, 부모님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마음껏 따님에게 표현해 주십시요.
- 한국청소년상담원(http://www.kyci.or.kr) 상담사례 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