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biosa mansenensis Nakai 산토끼꽃과 글, 사진 : 구정고등학교 교사 구수길
가을이 깊어지면, 푸르던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가 까까머리 이발하듯 군데군데 벼베기가 진행되고, 드디어는 황량한 빈들이 펼쳐지고, 어디에선가 날아온 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너도가고, 나도 가야지’하는 그 말이 목에 걸려 왠지 모를 슬픔에 젖었다가 가사의 2,3절에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하는 구절에선 듣는 이도, 부르는 이도 마치 자신이 그 슬픈 사랑의 주인공인양 절절해져서 음악시간에 합창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전체 분위기가 숙연해지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이별한 사랑이 다시 올 수 없는 청춘이기도 했고, 이웃집 순이였기도 했고, 청순가련한 음악선생님이기도 했고, 갑자기 떠난 친구이기도 했음을 깨달았지만 가을이 오면 그런 시린 사랑이 더욱 생각납니다.
솔체꽃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티나는 꽃인데 이 꽃을 보는 많은 이들은 꽃에서 슬픔을 느낍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정서지요. 보라색, 화사하고 잘 차린 맵시, 긴 꽃대, 높은 산 맑은 물……. 솔체꽃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입니다.
요즘은 각 식물원이나 화단에 심어 번식시킨 덕분에 코스모스 분위기로 가득 피어 있어 그 귀티가 많이 약해졌지만 심산유곡의 바위틈에 애처롭게 홀로 피어 아련한 보라빛 그리움을 내비치는 모습을 본 이들은 그 꽃에서 떠나보낸 옛사랑을 느낀다고 하지요.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의 정서가 깊어지는 시절. 너는 갔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하느냐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겠습니다. 함께 어디든 떠날까요? 아니면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만해의 고백을 가슴에 담고 제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할까요?
남은 가을에 좀 더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솔체꽃 그 시린 눈매를 응시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솔체꽃의 꽃말입니다. <ksk9999@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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