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저요. 선생님 제가 발표할께요.” 도내 유일의 다문화교육 중심학교인 춘천 봉의초등학교의 한 교실.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탓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기범이(가명·초2년)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기범이는 평상시 학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남들과 다른 얼굴색을 하고 있어 마음 한켠이 항상 무겁다. 하지만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봉의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다문화 교실’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래 친구들 모두 어머니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는 알 수 없는 동질감에 어느새 허물없는 ‘오빠 누나’, ‘형 동생’이 되기 때문이다. 기범이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평상시 발표가 부담스러웠지만,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이 수업 만큼은 그렇지 않다.
봉의초등학교 다문화 교실에는 기범이와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가정 자녀 30여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어떤 아이는 어머니가 일본과 중국계여서 외모상으로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지만, 기범이처럼 얼굴색이 다른 아이도 꽤 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수업을 진행하면서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이 있는 낱말퍼즐을 풀면서 학습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거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수업도 진행한다. 또 일본과 베트남, 필리핀, 태국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게 나라별 인사말을 익히게 한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언어능력이 뒤질 수 밖에 없어 되도록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윤봉태(42) 봉의초 교사는 “아이들이 평상시 대화를 하는데는 별 어려움을 못 느끼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등 조금 난이도 있는 말솜씨는 떨어진다”며 “아이들은 유아기 시절 어머니로부터 말을 가장 많이 배우는데, 이 부분이 아무래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평상시 학교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려워 한다”며 “다문화 교실의 수업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북돋고 언어능력을 일깨우는데 주력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봉의초등학교는 평상시 교과학습 시간을 통해 다문화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선입견 등을 깨트리기 위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처별 산발적 추진 업무가중·편견 교육 괴리감 형성
통합지원 시스템 구축 학교·지자체 유기적 협조 필요
▲ 춘천 봉의초등학교 다문화 교실에서 다문화가정 자녀 30여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 도교육의 현주소
국내 이주민 100만명 시대를 맞아 도내 다문화 가정 자녀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도내 다문화가정 자녀 학생은 지난 2007년 886명에서 2008년 1142명, 올해 1465명 등 매년 30% 내외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재학생의 0.5∼0.7%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제 더이상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등한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법률·경제·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다문화가정 자녀 상당수는 여전히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고 한국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학습 부진과 사회적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들 학부모들에 대한 한글 지도 프로그램이 취약해 자녀교육에 애를 먹고 있다.
우리사회 또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보다는 결혼 이민자와 자녀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여전히 갖고 있어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도교육청은 지난 2007년 교육국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다문화가정 자녀 교육 지원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교육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 해 10월에는 전국 최초로 ‘다문화가정 지원 인터넷 홈페이지(http://kwfamily.or.kr/)’를 구축,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한글판과 영어판,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판 등으로 구성돼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창으로 활용된다. 또 아이들을 키울 때 어려운 점 등에 대한 정보공유를 위한 ‘이야기 나눔방’과 국어 및 수학, 한국문화, 방과후학교, 취학전 교육프로그램 등을 담은 ‘공부방’, 교사들의 연구활동 및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까지 다문화 교육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전국 각 시·도교육청의 벤치마킹이 활발하다. 도교육청은 또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취학하기 전에 미리 한국문화와 생활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먼저 취학 전 학부모 안내자료를 중국어 등 외국어본으로 번영해 배포하고, 기초학력 습득을 위한 보충학습 자료를 보급하고 있다.
특히 각 단위 학교별로 학습 부진아에 대한 책임지도를 강화했고,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각 지역교육청별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했다. 또 도내 42개 기관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글 교육프로그램 50여개 강좌를 운영중이며, 다문화가정 연구학교와 중심학교, 모델학교를 각각 선정해 가장 적합한 다문화 교육방법을 찾고 있다.
도교육청은 특히 다문화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먼저 유아기부터 다른 생김새 등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유치원에서의 반-편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유치원 교육은 크게 개인차 및 문화에 대한 반편견 교육으로 나뉘는데, 개인차 반편견 교육은 성차와 생김새, 장애, 능력 등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양성 평등교육활동 및 특수교육대상 유아와의 통합교육을 실시중이다.
문화 교육은 국가, 인종(외국인), 문화 이해하고 존중하기 등의 아이템으로 ‘나·너·우리 함께 친구되기’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중등학교 및 교원들에 대한 다문화주의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교육과정과 연계한 체계적인 다문화주의 교육을 실시하는데 이어 교원 자격연수·직무연수시 다문화 이해교육, 학습부진아 특별교육, 집단 따돌림 예방 교육 등을 교양과목에 포함시켰다. 이 밖에 맞춤형 다문화가정교육지원, 다문화가정 자녀 학력보충, 다문화가정학생 멘토링, 지구촌이웃과 함께하는 문화교실, 겨울음악캠프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올해는 춘천교육대학 재학생을 활용한 대학생 멘토링제를 도입, 방학기간 동안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학교 적응 및 기초학력, 부진학습을 지도할 계획이며, 각 단위학교별로 기초학력 책임지도제를 도입해 운영할 방침이다.
도교육청 전세남 초등교육과장은 “현재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교육은 활발하지만, 정작 자녀들에 대한 교육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 각 부처별로 쪼개져 있는 다문화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한 곳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제점과 대책
다문화 교육의 현 주소는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가족부 등 중앙부처는 물론, 각 자치단체들마다 다문화가정 지원예산을 세워놓고 있다. 여기에다 각 시민 및 사회단체들까지 가세하고 있어 다문화가정은 한마디로 피곤하다.
이처럼 다문화 지원업무가 제각각 이뤄지면서 다문화 가정내 학부모와 자녀들에 대한 교육 또한 일률적이지 못하다.
각 중앙부처는 물론, 자치단체, 시민·사회 단체들마다 마련된 예산을 쓰기 위해 다문화가정의 학부모 및 자녀들을 동원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이로인한 다문화가정의 피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결국 다문화가정 교육에 대한 기피현상으로 까지 연결돼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대한 불신감 마저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다문화 교육과 관련된 업무 추진을 한 부처에서 통합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각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사업에 대한 교육효과를 얻을 수 없는데다 교육청과 학교의 업무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다문화 가정 학생들만 특별하게 취급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지양돼야 한다. 이같은 교육 스타일은 다문화 가정 학생들에 대한 ‘낙인효과’만 가져 올 뿐 이어서 일반학생과 함께하는 통합지원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특히 정부차원에서 진행되는 각종 다문화가정 지원사업이 현장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이는 교육현장과의 괴리 현상만 가져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피로감만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현장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 교육청과 가족지원센터, 학교, 유관기관간 유기적인 협조체제 구축이 그 것이다.
이 밖에 다문화가정 학생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다문화가정의 아버지에 대한 교육도 활성화 돼야 한다.
대부분 한국인인 아버지가 각종 교육에 동참하기를 꺼려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의 교육참여도 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들만 별도로 추려 교육하는 것은 일반학생과의 괴리 현상만 가져올 뿐”이라며 “중앙부처와 지자체, 각 단체들은 이를 모른 채 무조건적인 학생 동원만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민 koo@kad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