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2년째 세계 최고의 갑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회장이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선사업에 주력하려고 2년 후인 2008년 7월부터는 일상적인 회사 업무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 언론은 게이츠 회장의 사실상 은퇴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주 은퇴하는 게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지금까지의 회사 업무에서 자선사업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게이츠 회장은 오는 10월이 돼야 만 쉰 한 살이니 세계 최고의 회사를 일궈 놓고 떠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다. 몇 년 전부터 숙고한 끝에 내린 `힘든 결정'이라지만 우리네 범인들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용단이다.
그가 진작부터 밝혀온 재산 처분 계획을 보면 입이 더 벌어진다. 그는 5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재산의 5천 분의 1에 지나지 않는 1천만 달러(약 96억 원)만 가족 몫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반환할 작정이다. "부를 사회에 되돌려줄 큰 책임이 있고 또 최선의 방식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믿는다"는 지론에서다. 여기에 비춰보면 우리 나라 재벌 총수들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 웬만한 재벌은 거의 빠짐없이 총수들이 회삿돈 유용이나 탈세 등으로 신문 지면과 TV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교도소까지 간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최근까지도 서열 1, 2위를 다투는 재벌들이 변칙 상속과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각각 1조 원이라는 큰 돈을 사회기금으로 내놓아야 했다. 모(某) 총수는 그러고도 모자라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재판부에 반성문을 내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게이츠 회장은 1974년 고교 친구 폴 앨런과 최초의 소형 컴퓨터용 프로그램언어 `베이식'을 만든 이래 MS-DOS, 윈도95 등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개발해 회사를 반석에 올려 돈을 벌기도 많이 벌었지만 매년 수 십억 달러씩 자선사업에 쓰는 `큰손'이다. 작년에는 자선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아내 멜린다와 함께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재의연금 등을 낼 때마다 자기 돈이 아니라 회사와 직원들이 거둔 돈에 이름이나 내거는 우리 재벌 총수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게이츠 회장의 이런 선행은 집안 내력인 모양이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2세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상속세를 없애려고 하자 워렌 버핏을 비롯한 다른 부자들과 함께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상속세가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부를 상속받은 사람의 '귀족계급화'를 막는 수단이라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호주머니 회사를 만들어 모기업 돈을 빼돌리는 수법 등으로 변칙 상속이나 궁리하는 우리 재벌 총수들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하기 힘든 발상이다. 이러니 부자를 존중하는 사회와 경멸하는 사회로 갈라지는 것이다. 게이츠 회장의 결심이 "전 세계 부자들의 모범이 되는 동시에 이들에게 도덕적 부담을 주게 됐다"는 미국 CNN방송의 지적은 높은 신분이나 지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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