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삽화는 상상력을 키워주죠"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삽화가 없는 동화책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글과 '궁합'이 맞는 그림이 뒷받침돼야 동화책은 비로소 빛이 난다. 정문주(42) 씨는 이렇게 이야기에 시각적 감성과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는 동화책 삽화가다.
정씨의 작품은 서점 어린이책 진열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달 들어서만 '금이 간 거울'(창비)과 '내 이름은 개'(비룡소) 등 그가 작업한 동화책이 두 권이나 출간됐다.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에서도 불어교육을 전공했어요. 그저 그림이 좋아서 서른 살 때부터 일러스트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학습지나 출판사 기획 전집류 작업을 주로 했죠."
본격적으로 동화책 삽화를 시작한 것은 3년 전으로 지금까지 10여 권을 작업했다. '전학 간 윤주 전학 온 윤주'(문학동네), '주근깨 주스'(시공주니어), '걱정쟁이 열세 살'(사계절) 등 주로 초등생용 창작 동화 작업을 많이 했다.
그의 삽화들은 밝음과 따뜻함을 품고 있다. 또 동화 속 어린이들의 내면 심리를 깊이 있고 세심하게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화책에는 보통 고민이 많거나 소심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죠. 그 아이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정서가 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 제 모습이나 주위 풍경들을 동화 속에서 만나면 굉장히 반갑죠."
'걱정쟁이 열세 살'에 나오는 주인공 상우가 그랬다. 아버지가 가출을 해서 집에 계시지 않는데도 학교에서는 아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친구들 앞에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 상우의 모습에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많이 투영돼 있다고 했다.
이렇게 동화 속에서 유년 시절의 기억을 길어올리고 이를 그림 작업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치유 또한 함께 이뤄진다고 그는 말한다.
"수입은 학습지나 전집류 작업할 때가 낫지만 동화책 삽화를 그리는 일이 훨씬 재미있고 행복해요. 좋은 이야기를 만나서 주인공을 어떻게 표현해야겠다, 그림을 어떤 식으로 그려야겠다는 것들을 구상할 때면 정말 가슴이 뛰거든요."
그가 말하는 좋은 삽화란 무엇일까.
"글만 쫓아가는 삽화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고 상상력을 건드려줄 수 있는 것이 좋은 삽화죠. 한 선배가 삽화는 '초대 받은 손님'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주인은 아니지만 초대장이 있어 파티장 안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화 삽화나 그림책이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삽화도 독자적인 장르로 평가될 수 있는데도 제대로 된 평가나 지원이 없어요. 문예진흥기금만 해도 지원분야에 아동문학은 있지만 그림책이나 삽화는 없거든요. 그래서 동화책 삽화만을 그려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힘들죠. 독자들도 이야기를 읽기에만 급급하고 삽화는 '아 그림을 그렸구나'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워요."
요즘 정씨는 안도현 시인이 쓴 동시집 삽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시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는 "동시는 동화보다 '놀 수 있는' 여백이 많아서 색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른인 제가 읽어도 행복해지는 글과 그림이 있거든요. 언젠가 아이와 엄마가 함께 읽으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그림책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nan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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