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없어도 우리가 빠지면 안되죠”

뮤지컬 미스 사이공 출연하는 어린이 3명
장난치다가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熱演

달구벌의 한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초대형 뮤지컬 ‘미스 사이공’.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로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오는 25일까지 펼쳐지고 있다. 주·조연 배우들에서부터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쟁의 와중에서 피어난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를 가슴 저린 음악과 연기, 춤으로 관객들을 감동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이 뮤지컬에서 대사 한마디, 노래 한 소절 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빛내며 없어서는 안되는 배우들이 있다. 바로 ‘크리스’와 ‘킴’ 사이에 태어난 3살의 ‘탬’이다.
제희성(4), 김동휘(3), 엄창준(3)군 등 3명. 정신없이 장난을 치다가도 무대에만 올라서면 열연을 펼친다. 모두가 3~4살. ‘탬’ 역할에 딱 맞는 나이다.
이들은 대구 공연을 위해 대구에서 선발됐다.

▲대구오페라하우스내에 출연진 대기실 복도에서 한자리에 모인 어린이 3명이‘탬’의 복장을
한채로 멋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재우기자

공연을 앞둔 지난해 12월 ‘탬’역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나가자 무려 52명의 어린이들이 지원했다. ‘탬’으로 선발되기 위한 경쟁은 까다롭고도 치열했다.

무대공포증이 없어야 하고, 공연 도중의 권총 소리에 놀라지 않아야 했다. 사실성을 강조하는 이 극의 특성상 극중의 나이인 3살에도 근접해야 했다. 이런 조건에 맞는 4명의 어린이들이 최종 선발됐다. 그러나 이중 1명은 마지막에 탈락해 3명만이 공연에 참가했다.

지금 ‘탬’을 맡고 있는 어린이들은 담력과 연기력을 갖춘 ‘절정의 고수’들. 그러나 연기학원에는 전혀 가본 적도 없는 ‘생짜 신인’이다.

이들은 한 공연시 1명이 출연하면, 반드시 1명은 대기해야 한다. 어린이들이라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 월요일을 제외하고 토·일요일은 2회 공연이라 일주일동안 2~3일 밖에 쉬지 못하는 강행군이다. 공연 전 부모들이나 공연 관계자들은 걱정이 많았다. 공연 도중 나가 버리거나 제대로 연기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들에게 대구오페라하우스 지하의 출연진 대기실과 복도는 놀이터다.

이들과 인터뷰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붙잡아 놓으면 도망가고.

희성군의 아버지 제상철(34)씨는 “극중에서 ‘킴’의 정혼자였던 ‘투이’가 ‘탬’을 죽이려 할 때 당황했으나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고 극중에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자 이해하고 잘 따라 하는 것 같다”고 대견해 했다.

동휘군의 아버지 김지성(29)씨 역시 “나이가 제일 어린데도 자기 역을 잘 알아서 하니 아이가 부쩍 커 버린 것 같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혹시나 하는 어른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오히려 어린이들은 서로 잘 어울린다. 그러다가 서로 싸우다가는 또 화해한다. 이들중 동휘는 경북 상주에 집이 있어 매번 공연때마다 상주와 대구를 오간다.

어머니 황윤희(28)씨는 “무대에서 안 내려 가려고 하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했다”며 “상주와 대구를 오가는 것이 고되기는 하지만 동휘가 ‘탬’역으로 공연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견딜만하다”고 말했다. 동휘는 이 덕분에 이미 상주에서는 스타가 됐다.

창준군의 어머니 박나희(37)씨는 “창준이가 욕심이 많고 남에게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이 무대에 잘 맞는 것 같다”고 다행스러워 했다. 복도에서 정신없이 장난치던 어린 ‘탬’ 3명으로부터는 겨우 몇마디 들을 수 있었다.

희성이에게 “여기서 무엇이 제일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기어 가는 것, 뛰어 가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희성이보다 나이가 어린 동휘나 창준이는 “그냥 노는게 재미있다”며 금새 도망갔다.

희성이의 아버지 제상철씨는 인제대 음악학과 외래교수인 성악가. 무대 생활이 어떤지 잘 안다. 그래서 “희성이가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하겠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고 적극 밀어 주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들 어린이 3명은 대구 공연이 끝나면 오는 3월11일부터 25일까지 펼쳐질 김해 공연때도 그대로 출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