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글읽기] 강북 동화 읽는 어른
“다섯마리의 들쥐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겨우살이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다들 일하느라 바쁜데, 유독 한 마리만 눈을 반쯤 뜨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프레드릭, 너는 왜 일을 안하니?’ 열심히 일하던 다른 들쥐들이 이따금 물었습니다. ‘나도 일하고 있어. 춥고, 어둡고 긴 겨울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야.’ 겨울이 되자 들쥐 가족은 돌담 틈에서 그동안 모은 양식으로 살아갑니다. 양식은 이내 동이 납니다. 그제서야 들쥐들은 프레드릭에게 ‘네가 모은 양식은 어디 있니?’ 물어봅니다.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의 눈을 감긴 뒤 햇살과 색깔을 떠올려주고,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들쥐들은 행복한 표정에 젖습니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수줍게 볼을 붉힌 프레드릭이 대답합니다. ‘나도 알아.’”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새 신부 김진영씨가 어린이의 목소리로 귀엽게 읽어낸 이 그림책은 네덜란드 동화작가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1968)이다. 동화책을 손에 든 9명의 어른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그림책인 것 같아요. 빵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인간 존재 아닐까요. 프레드릭은 예술가일 수도 있고, 성자일 수도 있어요.” 발제를 맡은 고등학교 국어교사 이재경씨가 말했다.
“저는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떠올랐어요. 이 동화와 정반대죠? 남들 일할 때 놀았던 들쥐가 결국 열심히 일한 들쥐들에게 위안을 주잖아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이들에겐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죠?”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를 하고 있는 주부 김영숙씨가 받았다. “그래요. 좀 불공평한 것 같아요.” “우리도 교육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가르치잖아요.” 맞장구가 이어졌다.
“이솝 우화는 너무 권선징악적이에요.” 모임의 청일점으로 성대앞 서점 풀무질 일꾼 은종복씨가 분위기를 돌렸다. 이어 신당동 어린이도서관에서 활동하는 심명선씨가 말했다.
“마지막에 프레드릭이 ‘나도 알아’라고 수줍게 말하죠.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에요. 붉어진 볼을 보세요. 예쁘지 않아요? 스스로 빛나야만 그 빛이 주변으로 퍼지잖아요. 사실 ‘넌 시인이야’라는 칭찬에 ‘아니야, 별로 잘하진 못해’라며 겸손을 떨 수도 있었는데 자기가 잘하는 것을 떳떳이 인정한 거잖아요. 그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다른 들쥐들의 태도가 더 훌륭한 것 같아요. 만약 우리 교실에서 프레드릭처럼 행동했다면 ‘왕따’ 당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교사 정윤주씨의 말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는 그림책이기도 해요. 자기 색깔이 강해서 남들처럼 살 수 없는 프레드릭을 들쥐 가족은 이해하고 받아주죠. 구호로 그치곤 하는 ‘다름을 인정하자’는 말이 새삼 와닿아요.” 발제자 이재경씨가 맺었다.
지난달 29일 ‘강북동화읽는어른’ 저녁 모임의 모습이다. 어린이 그림책 한 편을 놓고 2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하는 이 어른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 이들은 ‘아이들이 좋은 생각을 하기 바란다면 어른들이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서울 우이동의 공동육아터 ‘꿈꾸는 어린이집’에 모인다. 이런 모임이 전국에 수백개, 4000여명이 참여 중이다. 서울에만 19개 모임이 있고, 군 단위까지 풀뿌리로 퍼져 있다.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이름의 중앙조직도 생겼다.
참고로 동화 읽는 어른들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이 바로 서로의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주위 사람들 때문에 사교육의 유혹을 느끼기도 하지만 매주 모임에 오면 “그런 생각이 사라져서 또 그렇게 일주일을 살아내기 때문”이란다.
〈인터넷 경향신문 손제민기자님의 글에서 발췌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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