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커버렸다.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얼굴엔 여드름이 하나 둘 나기 시작했고 통통하던 젖살이 빠지면서 청년티가 풀풀 났다. 외모뿐 아니다. 무엇보다 단조롭던 표정이 풍부해졌다. 난처한 질문에 가벼운 농담으로 응수하는 솜씨도 제법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 클리프 얘기다.
시리즈 1편이 개봉된 지 벌써 6년. 4만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을 꿰찼던 열한살짜리 꼬마는 이제 17세 소년이 됐다. “다니엘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 모두는 해리포터를 찾았다고 생각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는 해리포터가 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지난 28일 오후 일본 도쿄
힐튼호텔에서 ‘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홍보를 위해 투어에 나선 다니엘을 만났다. 170㎝ 정도의 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파란눈의 영국 소년에게 그간 ‘해리’와 함께한 시간에 대해 물었다.
“특별히 나쁜 점은 없지만 시간상 자유롭지 못했어요. 밖에서 친구와 만나서 놀고 싶어도 촬영스케줄이 있으면 그러기 쉽지 않죠. 장점이라면 지금처럼 전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데다 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이번에 같이 출연한 배우 게리 올드만과도 각별한 사이가 됐죠.”
이번 영화에서 처음 찍은 키스신에 대해 묻자 용수철처럼 대답이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좀 긴장했지만 나중에는 안떨리던데요. 특별한 답을 원하시겠지만 정말 다를 게 없었어요. 오히려 저보다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스태프가 감동을 받으셨대요. 어렸을 때부터 7년을 넘게 봐왔으니 감회가 남다르셨나봐요.”
그래도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여자친구’라고 답한 그는 “저도 또래들과 비슷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좋은 어른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저는 행운아”라고 겸손해 했다.
나이 어린 배우들과 촬영하는 작업은 제작사 입장에서도 만만한 일이 아닐 터. 제작자 데이빗 헤이만은 “영국 노동법은 16세 이하 어린이는 영화 촬영장에 9시간 반 이상 있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 중 3시간은 의무적으로 학과공부를 시켜야 하고 식사나 메이크업 시간도 빠지기 때문에 주인공의 경우 하루 촬영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오는 11일 개봉예정인 ‘…불사조 기사단’은 마법학교 5학년이 된 해리포터가 선택과 도전에 직면하면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린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고달프고,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게 또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 캐릭터를 표현해내야 하는 만큼 내면 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님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면서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제 연기도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원작자
조안 롤링도 많이 성원해 주고 지지해 주셨어요.”
다니엘은 “선택의 과정에서 오해를 받았을 때 진실을 알리려는 주인공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이번 영화의 메시지”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도쿄=김민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