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교육신문 편집국장 이낙진
중국에서는 지난 9월 초 3,000여명의 학생들이 선생님께 존경의 표시로 공개된 장소에서 절을 하는 사건(?)이 발생,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절은 물론 허리 굽혀 인사하는 행위조차도 봉건잔재로 배척되는 현실에서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절을 한다는 것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문제의 사건은 ‘미친영어(瘋狂英語, Crazy English)’라는 영어 학습법을 창안해 중국 전역에 그야말로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리양(李陽)이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던 중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보자며 절하기를 권유, 학생들이 이를 실행하면서 일어났다.
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절하기가 교육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굴복의 상징인 절을 시킨 것은 학생들의 인권을 모독하고 수치심을 안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리양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감사의 표시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거나 절을 하는 행위는 절대 비굴하거나 굴종적인 모습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반론에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상호간에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이 보편화됐으며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예의바른 나라가 되었다”는 부연설명까지 했다.
논쟁의 종지부는 중국 교육부에서 찍었다. 사건 발행 며칠 후 교육부 대변인 왕쉬밍(王旭明)은 브리핑을 통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 품덕(品德) 중 하나”라며 “교육에는 다양한 형식이 존재할 수 있고, 이번 절하기 사건의 관건은 그 행위의 진정성에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리양의 행위를 간접적으로 지지했다. 중국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해 현지 사정에 밝은 김정호 서울 백석초 교사는 “절하기 등 중국에서 일고 있는 전통문화의 부활 시도는 중국의 교육이 혼을 담지 못한 채 지나치게 입시교육 위주로 흐르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절 파동’에 대한 김 교사의 견해를 들으며 “선생님을 존경하면 성적은 저절로 오른다”고 강조하는 한 교장선생님이 떠올랐다. 서대전고 교장을 하다 지금은 같은 재단의 우송고에 근무하는 오원균 교장이 바로 그다.
꼭 6년 전인 2001년 이맘때 대전 월평동에 위치한 서대전고에서는 ‘스승존경 결의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서 학부모들은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달라며 회초리도 전달했다. ‘학교붕괴’라는 유행어가 탄생할 즈음 열린 이 결의대회는 인근 학교는 물론 전국으로 확산돼 나갔다. 여러 학교에서 ‘사랑의 매’ 전달이 이어지고, 선생님 구두 닦아 드리기와 선생님께 편지쓰기 운동도 펼쳐졌다. 스승의 은혜에 금연으로 보답한다며 담배 화형식을 갖는 학교도 나왔다.
교권회복 운동의 메카가 된 서대전고가 스승존경 운동을 시작한 것은 선생님들이 기(氣)를 펼 수 있게 해줘야 학교붕괴도 막고 공교육도 살릴 수 있다는 오 교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오 교장은 부임 후 학부모 대표들에게 “교사들이 뒤탈을 우려해 수업 중에 아이들이 엎드려 자거나 말거나 내버려둬서야 교육이 되겠느냐”며 선생님 존경의 필요성을 역설해 나갔고, 이에 공감한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결의대회를 연 것이다.
결의대회 이후 선생님들의 사기는 오르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툭 하면 걸려오던 학부모들의 시비전화도 사라졌다. 신바람이 난 선생님들은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아이들의 눈동자는 빛났다. 학교가 제대로 돌아간 결과는 시험성적이 말해줬다. 2003학년도 대입수능시험의 평균 점수가 8점이나 올랐다. 전국 평균 점수가 전년대비 3.2점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선생님 존경하니 성적은 저절로 올라’라는 제목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서대전고는 스승존경 운동을 펼치면서 지역 명문고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이 운동을 주도하고 스승존경운동중앙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오 교장은 요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러 시·도에 스승존경운동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인 교육시민사회운동으로 승화될 것 같았던 스승존경운동이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아내가 늦은 퇴근을 한 사람을 붙잡고 학교에서 있었던 고충을 토로한다. 약간의 언어장애를 가진 학생 일기장에 “친구들이 괴롭혀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 학생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본 모양이다. 눈물까지 흘리며 힘든 상황을 말한 아이를 돌려보낸 뒤 따돌림을 주었다고 지목한 학생을 차례로 불렀단다.
먼저 부른 학생에게 “○○이가 요즘 많이 힘든 것 같다. 친구들이 잘 보살펴 주고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겠니”라고 했더니 그 학생은 “네, 선생님. 앞으로는 사이좋게 지낼 게요”하며 웃으며 돌아갔다고 한다. 또 한 학생을 불러 같은 이야기를 하자 이 학생은 “다른 애들도 다 그랬는데…”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마음 상하지 않도록 달래가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반성을 하기는커녕 끝내는 인사조차 않고 갔다고 한다. 잠자코 듣다가 두 아이의 학업성적은 어떠냐고 물으니 “웃으며 답을 한 학생은 교과 성적이 우수한데 나중의 학생은 기초학력도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일선 선생님들에게 스승존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운동’으로 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기도 하지만 성적과의 함수관계는 연구해 볼 만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 우대(優待)’를 국가의 주요정책으로 추진하는 중국과 스승의 권위가 추락해도 별다른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두 국가의 경쟁력 차이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정택 교육감 취임 이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력신장과 교육격차 해소에 역점을 둔 결과,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됨으로써 학부모의 교육 만족도가 92%에 이르는 등 큰 성과가 있었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최근 내놓은 바 있다.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가는 지금 교원들의 만족도도 함께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된다면 우리 교육의 앞날이 훨씬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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