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아이들의 ‘방과후 가정’

ㆍ전주 ‘새움 지역아동센터’

전북 전주시 인후동에 자리잡은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가는 데는 1시간이 족히 걸렸다.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폭염속이었다. 전화를 통해 안내받은 대로 이면도로 몇 곳을 헤매다 허름한 회색 콘크리트 2층 건물앞에 다다랐다. ‘새움 지역아동센터’라는 간판이 정겨워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형형색색의 아이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아이들은 실내 체육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방과후 아동센터에 나온 어린이들이 전래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박용근 기자

◇ 아동문화센터 선생님은 엄마 = 새움 지역아동센터에는 모두 40명의 어린이가 둥지를 틀고 있다.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자녀들이다. 부모가 없어 할머니와 살거나, 엄마나 아빠 중 한 명과 사는 아이들도 많다. 이들의 엄마, 아빠 대부분은 일용직이거나 식당보조원으로 일한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에 가면 반기는 사람도 없다. 이들 어린이는 누구랄 것도 없이 아픈 사연을 품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뒤엔 5년 동안 여기서 생활했어요. 처음엔 맘이 편치 않았지만 지금은 집보다 더 반가운 곳이에요. 병원도 데리고 다니시고 미술치료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명철군·5학년)

명철이는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엄마는 시각장애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가 손자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지난해 돌아가셨다. 지금 명철이에게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동센터 선생님이다.

명철이는 “지금까지 학원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여기서 많이 배우니까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다”며 “엄마 대신 아동센터 선생님이 학교에 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등 엄마 역할을 해줬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철준군(4학년)은 지난해 3월 처음으로 아동센터를 찾았다. 아빠는 병환으로 누워 있고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늦게 귀가한다. 방과후 철준이가 갈 곳은 학교 운동장이나 친구집밖에 없었다. 철준이는 아동센터에 들어와 처음에는 눈도 안맞추고 또래들과 싸우기만 했다. 하지만 철준이는 1년 남짓 만에 퀴즈대회 1등을 목표로 하는 모범어린이로 성장했다.

◇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 지난 여름방학 때 아동센터는 더 북적댔다. 아이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센터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아동센터는 저녁밥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도움을 얻어 밤 8시30분까지 시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숙제도 하고 독서도 하며 요일별로 짜여진 특별활동을 한다. 영어, 국어, 수학 등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새움 아동센터가 가난한 어린이들의 보금자리로 정착된 것은 종사자들의 헌신 덕택이다. 아이 40명을 돌보는 아동센터의 정부지원금은 고작 370만원. 프로그램 운영비로 120만원을 지출하고 나머지 돈으로 두 명의 생활복지사 인건비와 임차료, 전기요금, 냉난방비 등을 해결해야 한다. 김미혜 복지사는 “급여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생활할 수 없다. 가난해 학원을 갈 수 없거나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내 자식으로 삼아야 한다. 멍하니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 내가 왜 이 일에 매달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새움 아동센터 여건은 좋은 편이다. 복지법인 ‘세이브 더 칠드런’의 도움을 받아 센터장이 파견된 데다 영양지원 사업과 야외 신체활동 프로그램도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은정 복지사는 “복지법인 도움을 받지 않는 다른 아동센터 여건은 아주 열악해 복지사 급여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인 만큼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움 아동센터 유혜영 센터장은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0.17%에 그치는 아동복지예산 문제를 들어 아동센터를 여과해 나가려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현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 국가가 책임을 지고, 시설보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문화·환경문제까지 개선하려는 정책적 지원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