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사퇴', 한나라 '서울시장 10년 아성' 무너지나

[미디어오늘 안경숙·조현호·허완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결국 사퇴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서울시장을 뽑는 10·26 보궐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정국은 핵파장에 휩싸이게 됐다. 내년 총선과 대선의 민심 가늠자가 될 새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권 재편의 촉매제로 작용될 전망이다. 서울시의회를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전임 시장을 이어받은 오세훈 시장의 사퇴는 여당의 '10여년 서울시장 아성' 수성여부와 그 파장에 주목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6일 "주민투표 결과 책임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제 거취로 인한 정치권 논란, 행정공백 최소화위해 즉각적 사퇴로 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215만 시민여러분께서 투표장 찾아줬음에도 불구, 이번 투표에서는 그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며 "복지의 방향에 대한 서울 시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투표함이 닫히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오 시장은 "민의 뜻 꽃피우지 못한 것은 내 책임"이라며 "제가 원하는 뜻 안나와도 이것 또한 오늘의 민심"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투표 과정에 대해 "이번 주민투표는 민주주의 발전 새로운 지평 열기도 했다"며 "내가 제안했지만 시민여러분 현명한 판단으로 시작, 최초 주민청구형 주민투표라는 의미있는 기록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새 민주주의가 열리는 계기가 됐다. 독재를 넘긴 민주주의, 인기영합주의를 극복해야 한단계 발전하고,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으로 민주주의의 새 전기를 만들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약 6분동안, 준비된 기자회견문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간 뒤 오 시장은 질의응답 없이 곧바로 브리핑룸을 떠났다.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은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오늘 오후에 의회에 사임통지서를 제출할 것"이라며 "오늘 통지가 되면 27일 0시부로 즉각 (사퇴 효력이) 발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오늘 오후 5시에 이임식이 치러질 것이라고 전했다. 오 시장의 사임통지서는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에게 전달된다.

오 시장의 사퇴에 대해 민주당은 "정략적 유불리를 따져 사퇴시기를 미뤘다면 행정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더욱 확산시켰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오 시장이 즉각 사퇴의 입장을 밝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320억 이상의 혈세가 낭비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심히 유감을 표명"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국민은 10월 보궐선거에서 더 큰 평가와 대안으로 집권여당의 오만함을 심판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와는 달리, 오 시장의 사퇴로 한나라당의 기류는 급변했다. 무상급식 투표일인 24일만 하더라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오세훈 서울시장은 26일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10월 재․보선을 놓고 한나라당의 기류가 급선회한 이유는 뭘까.

홍 대표는 2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조찬간담회에서 자신이 만류했음에도 즉각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오 시장에 대해 "국익이나 당 보다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서울시 국정감사를 마치고 10월 초에 사퇴하겠다는 '계획'은 오 시장이 한나라당과 청와대에 약속한 것이지, 한나라당이 10월 보궐선거가 부담스러워 오 시장에게 사퇴 시기를 늦출 것을 요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홍 대표와 생각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가 25일 한나라당 서울 의원 29명을 조사한 바에 다르면, 62.1%인 18명이 '9월 이내 사퇴해 10월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자'는 입장이다. 괜히 사퇴를 미루다 '꼼수를 부린다'는 오명까지 쓰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여당 심판론'이 더욱 득세할 테고, 그러한 상황이 한나라당, 특히 서울을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인 셈이다.

실제로, "투표율 25.7%는 작년 6·2 지방선거 때 오 시장의 득표율(25.4%)을 넘어선 것으로, 여권 지지층의 결집을 좀 더 이끌어내 10월 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선전하면 투표함조차 열어보지 못한 오 시장의 '단계적 무상급식'안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을 다시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의 구상이라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4면 < 당청 "조기사퇴가 민심"…10월보선 급선회 > 기사에서 "이번에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가 대부분 한나라당 지지층이라고 할 때 10월 재·보선 투표율을 50% 정도로 가정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며 ""25.7%라는 주민투표율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논리도 (한나라당에) 조심스럽게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투표율 25%만 넘어도 성공한 것"이라는 홍준표 대표의 '자신감'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친박계를 중심으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인한 '상처'를 10월 보궐선거로 마무리해 내년 총선과 일정한 선을 긋는 게 '박근혜 대세론'에도 도움이라는 인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26일 사퇴 기자회견. KBS 뉴스 캡쳐

동아일보도 "친박(친박근혜)계 일각에선 '이왕 치를 보선이라면 내년 총선과 함께 치르는 것보다는 올해 10월에 선거를 치르는 게 그나마 리스크가 적다'며 10월 보선을 선호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과 서울시장 보선을 함께 치렀다가 자칫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박근혜 대세론'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26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도 한나라당으로서는 오 시장의 즉각 사퇴가 별로 아쉬울 게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25일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다음 서울시장감으로 한명숙 전 총리(민주당)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가 12.4%를 얻어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2위를 차지한 나경원 의원(10.6%)과 오차범위(±4.4%) 내에 있고, 이번 투표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나 의원을 차기 서울시장감으로 꼽은 사람이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점도 한나라당 입장에선 '한 번 해 볼 만한 게임'이라는 상황 판단을 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보수 언론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한나라당이 입게 될 '상처'를 오 시장의 '즉각 사퇴'와 '10월 보궐선거로 내년 총선·대선 선긋기'를 통해 극복한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민주당 등 야당이다. 조선일보가 경고했듯, 주민투표 결과로 '자만'했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도 전에 민주당 인사가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그리 좋게 비치지 않을 수 있다. 또, 한나라당이 무상급식 투표를 놓고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민주당이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통합의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야권이 외치는 '정권 교체'는 그저 바람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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