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재외동포로 북녘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한 분이 남녘의 지인에게 핵실험 이후 닥칠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그의 인도적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부 내용을 손질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사랑하는 000 님!
저는 북녘 사역지에 체류하며 최근 심화하고 있는 그곳 동포들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침울한 분위기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적극적·생산적인 말만 골라하며 노력해 보았지만, 피조물의 한계를 절감하며 충전을 위해 잠시 나왔습니다.
요즈음 북녘의 분위기는 암울하고 처연합니다.
‘북핵 위기’라는 말로 압축되는 최근의 위기상황을 바라보는 눈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울의 분위기는 심각할 수밖에 없지만, 주변 국가들의 호들갑은 북녘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과 절망감에 비하면 꽃놀이 패를 즐기는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실은 냉엄합니다. 추수 철임에도 북녘 장마당의 쌀값은 이미 긴장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제2 고난의 행군이 예고되는 분위기 속에, 다가오는 겨울과 내년 봄 춘궁기의 극심해질 식량난을 염려하며 일어나는 몸부림 현상이지요. 거의 맨손으로 살벌하고 처절한 현실에 맞서야 하는 풀뿌리 인민들의 고뇌에 찬 표정과 힘겨운 삶의 투쟁 현장을 상상해 보시며 위로와 격려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무시하거나 뛰어넘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 저도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요즘 00사육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북녘의 동포들이 이 힘겨운 역경의 때를 벗어나는 데 적은 힘이나마 보태라는 우리 주님의 강권하심에 순종하려는 몸부림의 일종입니다.
저는 북녘 곳곳에 걸려 있는 많은 구호 중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에 짙은 아픔과 함께 살아나는 불씨의 따스함을 동시에 느끼곤 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포착하는 우리 기독교 사상의 탁월한 동력으로 이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속히 벗어나 화합과 번영의 새 시대를 열게 해 주실 만유의 주님을 확실히 믿으며 천성을 향해 진군합니다.
2006년 10월 20일
미거한 사역자 △△△